KOREA BUILD MAGAZINE
코리아빌드 매거진
대한민국 건설·건축·인테리어의 현재와 미래를 담는 코리아빌드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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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된 공장과, 통제되지 않는 현장
학회를 이끌게 되시면서, 지금 건설자동화·로보틱스 분야에서 가장 주목하고 계신 변화나 과제는 무엇입니까?
지금 가장 주목하는 변화는 건설자동화·로보틱스가 더 이상 특정 장비나 개별 공정의 효율화에 머물지 않고, 건설산업의 생산방식 자체를 바꾸는 전환의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건설산업은 오랫동안 숙련 인력의 경험과 현장 대응력에 의존해 왔습니다. 그러나 인구구조 변화, 숙련공 부족, 안전에 대한 사회적 요구, 생산성 정체라는 현실 앞에서 기존 방식만으로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피지컬 AI(Physical AI)가 이러한 한계를 넘어설 중요한 열쇠라고 봅니다. 로봇이 현장을 인식하고, 판단하고, 사람과 협업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학회는 이 전환이 단순한 기술 유행에 그치지 않고, 건설산업의 새로운 질서와 표준으로 자리 잡도록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건설 현장은 공장과 달리 매번 조건이 바뀝니다. 이런 환경에서 로봇과 AI가 일한다는 것은 다른 산업의 자동화와 무엇이 다른가요?
건설 현장에서의 자동화는 제조업의 자동화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공장은 환경을 통제한 뒤 로봇을 투입하지만, 건설 현장은 통제되지 않는 환경 속에서 로봇이 스스로 적응해야 합니다. 지반, 날씨, 자재 상태, 작업자 동선, 장비 간섭, 공정 변화가 매 순간 달라집니다. 따라서 건설 로봇은 단순히 반복 동작을 수행하는 기계가 아니라, 불완전하고 변화하는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는 지능형 작업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피지컬 AI를 건설산업의 핵심 화두로 보는 이유입니다.
앞으로의 건설 로봇은 사람을 대체하는 존재라기보다, 사람이 더 안전하고 정밀하며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돕는 동반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철학이 건설자동화·로보틱스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굴삭기 어라운드뷰 모니터링 화면. 네 방향 카메라가 잡은 영상을 위에서 내려다본 한 장으로 합쳐, 운전석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각을 대신 보여준다.
자료 · 한국건설자동화·로보틱스학회
먼저 자동화되는 일은 따로 있다
자재 운반이나 콘크리트 표면 처리처럼 빠르게 자리 잡은 작업이 있는가 하면, 마감처럼 더딘 영역도 있습니다. 그 차이를 어떻게 읽고 계십니까?
건설 로봇의 확산 속도는 기술의 우열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떤 작업은 반복성이 높고 작업 범위가 명확하며 위험도나 노동 강도가 커서 자동화의 효과가 곧바로 드러납니다. 자재 운반, 천공, 철거, 콘크리트 표면 처리와 같은 분야가 그렇습니다. 반면 마감 공사는 인간의 감각, 숙련도, 미세한 품질 판단이 깊이 개입되는 영역이기에 로봇 적용이 상대적으로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기술 수준이 낮아서라기보다 마감 작업 자체가 지닌 복잡성 때문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한 번에 자동화하겠다는 조급함이 아니라, 현장 수용성과 경제성이 높은 영역부터 성공 사례를 만들고, 이를 토대로 더 정교한 공정으로 확장하는 지혜입니다. 건설자동화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며, 기술보다 현장을 먼저 읽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건설자동화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며, 기술보다 현장을 먼저 읽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도로면 균열 실링 로봇의 현장 실증. 왼쪽은 차량에 실은 장비 구성, 오른쪽은 균열을 따라 실링재를 채우는 작업 장면이다. 반복성이 높고 위험도가 큰 유지보수 작업이 먼저 자동화되는 이유를 보여준다.
자료 · 한국건설자동화·로보틱스학회
기술이 현장에서 살아남는 조건
기술이 연구실을 넘어 실제 현장에 자리 잡으려면 학회의 역할이 중요할 텐데, 연구와 기업·정부와의 협력 등 여러 길 가운데 학회가 가장 힘을 쏟아야 할 지점은 어디라고 보십니까?
학회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연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자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기업은 그것을 제품과 서비스로 구현하며, 정부는 제도와 정책으로 확산의 길을 마련합니다. 그러나 이 세 영역이 따로 움직이면 기술은 연구실에 머물고, 산업은 위험을 감당하지 못하며, 제도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학회는 바로 그 사이를 잇는 신뢰의 플랫폼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건설 로봇은 기술 성능만으로 확산되지 않습니다. 실증 현장, 안전 기준, 성능 평가, 작업 표준화, 발주제도, 공사비 산정 체계가 함께 정비되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학회가 학술단체를 넘어 산업 전환의 촉진자, 정책 제안자, 현장 실증의 조정자 역할까지 수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저희의 시대적 소명입니다.
학회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연결'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로면 균열 실링 로봇부터 흄관 매설 로봇, 지능형 굴삭 로봇, 파일 두부 원커팅 및 핸들링 로봇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의 로봇을 직접 만들어 오셨습니다. 그와 관련한 오랜 경험이 지금 학회를 이끄는 시각에 어떻게 배어 있습니까?
건설 로봇을 직접 개발하며 제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좋은 기술과 쓰이는 기술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도로면 균열 실링 로봇, 흄관 매설 로봇, 지능형 굴삭 로봇, 파일 두부 원커팅 및 핸들링 로봇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설계도면과 실험실 조건만으로는 결코 현장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현장에는 흙, 물, 진동, 오차, 일정 압박, 작업자의 판단, 장비 운용의 현실이 있습니다. 결국 로봇은 기술적으로 정교해야 할 뿐 아니라, 현장 작업자가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공정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하며, 경제적으로도 설명되어야 합니다. 즉, 연구자로서는 새로운 원리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만, 현장에서는 "누가, 언제, 어떤 장비로, 얼마의 비용으로, 얼마나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이 경험은 학회를 이끄는 제 시각의 중심에 있습니다. 저는 학회가 기술의 가능성을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이 현장에서 살아남는 조건까지 함께 고민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파일 두부 원커팅 및 핸들링 로봇의 건설 현장 실증. 굴착기에 장착해 파일 머리를 한 번에 자르고 들어 옮긴다. 실험실 조건이 아니라 흙과 진동, 오차가 있는 자리에서 성능이 판가름 난다.
자료 · 한국건설자동화·로보틱스학회
이번 기술 세미나를 찾는 건축가, 시공사, 장비·설비 기업에게, 그리고 학·연·관 관계자들에게 다가올 몇 년의 변화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십니까?
다가올 몇 년은 건설산업이 과거의 관성에 머물 것인지, 새로운 생산체계로 도약할 것인지를 가르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건축가는 이제 아름다운 공간을 설계하는 데서 더 나아가, 로봇과 자동화가 구현 가능한 시공성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시공사는 인력 투입 중심의 관리 방식에서 데이터와 장비, AI가 결합된 공정 운영 방식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장비·설비 기업은 단순 장비 공급자가 아니라 지능형 건설 솔루션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학계와 연구기관은 현장 문제를 출발점으로 삼는 실용적 연구를 더욱 강화해야 하며, 정부는 실증과 제도 개선을 통해 기술 확산의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건설자동화와 피지컬 AI는 건설의 본질을 훼손하는 기술이 아니라, 더 안전하고 품격 있는 건설을 가능하게 하는 문명적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기술 세미나가 그 전환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