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BUILD MAGAZINE
코리아빌드 매거진
대한민국 건설·건축·인테리어의 현재와 미래를 담는 코리아빌드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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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한 번 지으면 오랫동안 사용된다. 반면 집 안에 들어오는 기술과 서비스는 훨씬 빠르게 바뀐다. 몇 년 전만 해도 스마트홈은 조명이나 냉난방을 스마트폰으로 제어하는 기능으로 인식됐다. 이제 스마트홈은 인공지능이 가족의 생활방식과 공간의 상태를 이해하고, 가전과 설비, 에너지, 보안과 돌봄을 하나의 경험으로 연결하는 AI홈으로 진화하고 있다.
현장에서 이 변화를 지켜보며 더욱 분명하게 느끼는 것은 앞으로의 집이 특정 제조사나 하나의 플랫폼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브랜드의 가전과 기기, 서비스를 선택해 사용한다. 집은 이러한 선택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등장할 기술까지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AI홈은 기능이 많은 집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더할 수 있는 열린 집이다.
개방성과 상호운용성이 경쟁력이 됐다
글로벌 스마트홈 산업에서도 개방성과 상호운용성이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 매터(Matter)와 같은 국제표준은 서로 다른 기기와 플랫폼이 함께 작동할 기반을 넓히고 있다. 경쟁의 중심도 개별 기기의 성능에서 집 전체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협력하고, 사용자의 상황에 맞춰 움직이는가로 바뀌고 있다. 최근에는 AI가 공간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두뇌가 되고 로봇이 그 판단을 행동으로 옮기는 AI홈과 로봇의 융합도 구체화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모듈러 주택 전문기업과 선보인 AI홈 기반 모듈러 주택은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공장에서 주택을 제작하는 단계부터 AI 가전과 스마트홈 솔루션을 함께 설치하고 등록해, 입주자는 주택이 완성된 순간부터 연결된 환경을 이용할 수 있다. 이는 스마트홈이 완공 후 몇몇 기기를 덧붙이는 옵션이 아니라 건축의 기획·설계·생산 과정에 포함돼야 할 주거 인프라임을 보여준다.
무엇을 미리 정하지 않고 남겨둘 것인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집이 닫혀 있으면 새로운 경험을 담기 어렵다. 완공 이후 통신망이나 제어체계를 다시 바꾸려면 많은 비용과 제약이 따른다. 특정 방식에만 맞춰진 배선과 설비, 확장성을 고려하지 않은 홈네트워크, 외부 서비스와 연결하기 어려운 폐쇄형 구조는 시간이 흐를수록 집의 가치를 낮출 수 있다. 반대로 설계 단계에서 연결과 확장의 가능성을 열어둔 집은 새로운 기기와 서비스가 등장해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건축 설계자와 건설·시공 실무자의 역할은 과거보다 중요해졌다. AI홈은 가전제품 몇 개를 추가하는 문제가 아니라 주거공간의 기반을 설계하는 일이다. 전력과 통신, 센서와 제어, 공간정보, 보안, 에너지, 공동현관과 엘리베이터 같은 공용설비가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 동시에 특정 제품이나 브랜드에 종속되지 않도록 국제표준과 개방형 연동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설계 단계에서 미래의 모든 기술을 예측할 수는 없다. 필요한 것은 정답을 미리 정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들어올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통신과 전력 인프라의 확장성, 기기 교체와 추가 설치의 용이성, 데이터와 제어권한의 안전한 연계, 서로 다른 시스템을 연결할 표준 인터페이스를 고려해야 한다. 가정용 로봇이 보편화될 미래에는 이동 동선과 문턱, 자동문, 엘리베이터 연동, 충전공간도 새로운 주거설계 요소가 될 것이다.
필요한 것은 정답을 미리 정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들어올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집은 생애주기를 따라 자란다
열린 집은 소비자에게 더 넓은 선택권을 제공한다. 입주자는 한 번 선택한 브랜드에 계속 묶이지 않고 생활방식과 가족구성의 변화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를 추가할 수 있다. 고령자가 된 뒤에는 건강과 돌봄을 연결하고, 에너지 환경이 달라지면 관리 서비스를 고도화할 수 있다. 집이 고정된 상품을 넘어 생애주기에 따라 진화하는 생활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산업 측면에서도 개방형 AI홈은 더 큰 기회를 만든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 디바이스 기업, 건설사, 인테리어·설비업체, 통신사업자, 에너지·돌봄·보안 기업이 함께 참여할 수 있다. 다만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표준화와 시험인증, 사이버보안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현장에서 여러 기기와 플랫폼을 설계·설치·관리할 전문인력과 자격제도도 필요하다. 기술의 연결을 생활의 가치로 완성하는 것은 결국 현장의 역량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가전과 반도체, 통신, 플랫폼 기업을 두고 있고, 공동주택 중심의 주거환경과 뛰어난 건설·인테리어 역량도 갖추고 있다. 이제 개별 제품의 우수성을 넘어 집 전체를 개방형 플랫폼으로 설계하는 산업적 전환이 필요하다. 신축뿐 아니라 기축 주택에도 적용할 수 있는 표준화된 AI홈 모델을 만들고, 설계부터 설치와 유지관리까지 이어지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오늘의 공간을 만드는 동시에 앞으로 수십 년의 변화를 담을 그릇을 만드는 일이다. 완공 후 어떤 기기를 넣을 것인가보다 설계할 때 무엇을 연결하고 무엇을 열어둘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특정 브랜드의 집이 아니라 사람과 기술, 서비스가 자유롭게 연결되는 집. 그러한 열린 집을 준비하는 일이 AI홈 시대 건축·건설산업의 새로운 책임이자 가장 큰 기회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