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BUILD MAGAZINE

코리아빌드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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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위험한 노동의 종말, 피지컬 AI가 온다
2026 현장을 지배하는 '스마트 건설 로봇'
에디터 구민영, 정사은
위험한 노동의 종말, 피지컬 AI가 온다

로봇청소기가 처음 나왔을 때, 아무도 청소부가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청소하는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건설 현장에서도 비슷한 전환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거실 바닥이 아니라 20층 외벽, 철골 구조물 사이, 밤새 자재가 쌓이는 복도에서다.

2026년 한국의 주요 건설 현장에 로봇은 이미 출근 도장을 찍었다. 이들이 채우기 시작한 자리는 가장 위험한 노동의 현장이었다.

현장에 사람이 사라진 자리는 어디인가

먼저 숫자를 보자. 2024년 한 해 동안 건설 현장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가 207명이었다. 그중 절반이 넘는 106명, 51%가 추락이었다. 고층 외벽, 비계 위 도장, 철골 위 볼트 조임. 사람이 높은 곳에 올라가야 했던 작업 대부분이 위험의 원천이다.

207
2024년 건설현장 사고사망
국토안전관리원
51%
추락 사고 비중
국토안전관리원
1,969
정부 스마트 건설 R&D (6년)
국토교통부
9
현대건설 로보틱스랩 공개 (2024)
현대건설

여기에 중대재해처벌법이 더해졌다. 현장에서 중대 사고가 일어나면 경영진이 직접 형사 책임을 진다. "조심하라"는 교육이나 안전장비 지급만으로는 더 이상 면책이 안 되는 구조가 됐다. 인력은 줄고, 위험은 그대로이며, 책임은 무거워졌다. 사실 이 세 가지 압력이 동시에 현장 관리자의 어깨를 누르고 있다.

문제는 그 일을 할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는 데 있다. 건설 기능인력은 빠르게 고령화하고 있고, 힘들고 위험하고 더러운 공정일수록 젊은 인력이 들어오지 않는다. 위험은 그대로인데 그 자리를 채울 사람을 구하기가 해마다 어려워진다. 로봇이 '있으면 좋은 것'에서 '없으면 안 되는 것'으로 넘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도 같은 흐름을 따라왔다. 국토교통부가 2020년부터 추진한 스마트 건설기술 연구개발(R&D) 사업 규모는 6년간 1,969억 원. 기업과 대학 120여 개 기관이 참여했고, 목표는 생산성·공사기간·재해율·디지털화 네 항목 모두에서 25% 개선이다. 토공 자동화, 구조물 원격·자동화 시공, 건설 안전 통합관제가 핵심 분야로 지정됐다. 지금 현장에서 움직이는 로봇들은 이 정책의 수혜자이자 실행자다.

먼저, 대기업이 길을 닦았다

정부가 길을 깔자, 판을 먼저 키운 건 대기업이다. 현대건설은 2024년 용인에 '로보틱스랩'을 열어, 사각지대를 점검하는 사족보행 로봇 스팟부터 야외·실내·수중을 살피는 세 종류의 드론, 800km 밖 크레인을 움직이는 원격 조종까지 아홉 종을 한자리에 펼쳤다. 순찰부터 측량, 원격 시공까지 건설 전 공정을 로봇으로 메우겠다는 그림이다. 두산로보틱스는 엔비디아와 손잡고 '피지컬 AI'로 방향을 틀었다. 가상에서 수없이 훈련한 동작을 실제 로봇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이 회사 로봇팔은 이미 1,200도 소각로 앞에서 사람 대신 폐기물을 밀어 넣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마감 공정을 겨눴다. 쪼그려 앉아 흙손을 밀던 바닥 미장과 달비계에 매달려 하던 외벽 도장을 로봇에 넘겼고, 외벽도장 로봇은 2026년 국토교통부 건설신기술로 지정됐다. 삼성물산은 철골에 내화재를 뿜는 내화뿜칠, 무거운 패널을 까는 액세스플로어처럼 사람이 천장 가까이 매달려야 했던 시공에 로봇팔을 들여 시간과 인력을 40%가량 줄였다. 자본과 큰 현장을 쥔 대기업은 로봇이 돈이 되고 사람을 지킨다는 걸 스케일로 증명했다. 대기업이 생태계와 스케일을 깔았다면, 그 위에서 더 좁고 더 빈자리를 파고든 건 스타트업이다.

대기업이 현장에 들인 로봇의 영역 — 순찰·점검, 바닥 미장, 외벽 도장, 고열 작업, 양중·조립

대기업이 현장에 들인 로봇의 영역 — 순찰·점검부터 고열 작업, 양중까지. 도식 = 코리아빌드 자체 제작.

스타트업은 비어 있던 자리에서 시작한다

그 빈자리는 저마다 다르다. 자재 운반, 안전 점검, 사람이 매달려야 하는 시공. 그 첫 자리가 자재 운반이다. 무겁고, 반복적이고, 야간에는 작업이 멈춘다.

고레로보틱스 — 야간을 메우는 자재 로봇

고레로보틱스의 이동민 대표는 포스코이앤씨에서 10년 넘게 일하며 그 빈자리를 가까이서 봤다. 강마루와 타일 같은 무거운 마감 자재를 밤마다 사람이 짊어지고 세대까지 나르는 일이었다. "사람이 없는 야간을 활용하면 어떨까." 이 질문에서 GL-1이 나왔다. 강마루·타일 같은 박스형 마감자재를 중심으로 레미탈과 위생기구까지 싣고, 공동주택 현장을 스스로 누비는 자재 운반 로봇이다.

핵심은 통신망 없이도 정밀하게 움직인다는 데 있다. 건설 현장은 물류 창고와 달리 무선 신호가 불안정하고 풍경이 날마다 바뀐다. GL-1은 와이파이나 LTE 없이도 현장을 돌며 스스로 지도를 그리고, 미리 입력한 도면으로 제 위치를 잡는 SLAM 방식으로 달린다. 현장 데이터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아 보안 요건도 충족한다. 여기에 EVW-1을 더했다. 엘리베이터 버튼판에 붙이면 로봇이 버튼을 직접 눌러 엘리베이터를 부르고 층을 옮기는 장치로, 설비를 교체하거나 연동하지 않고도 자재의 수직·수평 운송이 하나로 이어진다.

고레로보틱스 GL-1 자재 운반 로봇

고레로보틱스의 자재 운반 로봇 GL-1. 통신망이 없는 건설 현장에서도 자율주행한다. 2024년 10월 포스코이앤씨 인천 송도 공동주택 현장에서 엘리베이터에 스스로 타고 내리는 수직 운송을 공개 실증했다.

© 고레로보틱스

2024년 10월, 포스코이앤씨의 인천 송도 공동주택 현장에서 자재를 실은 GL-1이 스스로 엘리베이터에 올라 목적 층까지 닿는 과정이 공개됐다. 이동민 대표는 "야간에 사람이 직접 짊어지고 나르던 가장 고되고 위험한 작업을 로봇이 대신하면, 숙련 인력은 다음 날 핵심 작업에 집중하고 사고 위험은 근본적으로 줄어든다"고 말했다. 고레로보틱스는 올해 초 CES 2026에서 혁신상 세 개로 3관왕에 올랐고, 누적 69억 원을 투자받았다. 2026년 4월에는 국토교통부 건설로봇 국책과제(280억 원)를 비롯한 정부 과제를 잇따라 수주하며, 전주·송파·강릉의 공동주택 현장으로 적용을 넓히고 있다.

아이티원 — 사고를 미리 보는 눈

아이티원은 고소작업과 안전 점검, 두 영역을 파고든다. 먼저, 사고를 미리 보는 눈이다. 스마트건설 플랫폼 코닛의 코닛아이는 현장에 이미 깔린 CCTV와 드론 영상을 비전 AI로 읽어, 로봇을 따로 들이지 않고도 추락이나 끼임 같은 위험을 실시간으로 가려낸다. 반복해 잡히는 사고 유형과 시간대를 데이터로 쌓아, 현장마다 안전 대책을 다시 짜는 근거로 삼는다.

위험한 작업을 로봇에게 넘기기도 한다. 코닛러너는 굳지 않은 콘크리트 표면에 정밀한 요철을 새겨 층과 층의 결합력을 높이는 로봇으로, 열다섯 사람이 매달리던 이 거친 마무리를 로봇 두 대와 작업자 한 명이 40분 만에 끝낸다. CES 2025 혁신상을 받은 기술이다. 로봇 브랜드 코보의 고소작업 양팔로봇은 작업자가 지상에서 원격으로 조종해 높은 곳의 반복 작업을 대신하니, 사람이 비계에 오를 일을 덜어 준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고하중 로봇 기술을 이전받아 만든 양팔로봇 암스트롱은 200kg을 한 번에 들어, 사람이 짊어지던 중량물 운반을 대신한다.

코닛러너가 콘크리트 표면에 요철을 새기는 모습

콘크리트 표면에 요철을 새기는 코닛러너.

© 아이티원

아이티원 고소작업 양팔로봇

지상에서 원격으로 조종하는 고소작업 양팔로봇.

© 아이티원

동아로보틱스 — 한계 없는 시공, 로봇이 짓는 3D 건축 구조물

동아로보틱스는 건설 현장에 3D 프린터를 도입해, 거푸집 없이 콘크리트를 층층이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구조물을 완성한다. 도면 데이터를 입력하면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가 이를 분석해 로봇의 정밀한 이동 경로와 콘크리트 토출량으로 즉각 변환한다. 덕분에 기존 방식으로는 구현하기 까다로운 유선형이나 비정형 구조물도 정교하게 빚어낼 수 있다.

대표 모델인 3D 콘크리트 프린터 'ACRO-IRT'는 기본 로봇 팔의 6자유도를 넘어 4개의 부가축을 연동한 10자유도(10-DOF) 다관절 시스템을 갖췄다. 이를 통해 출력 가능한 영역을 대폭 넓혔으며, 한층 복잡한 형태의 시공도 가능해졌다. 이 ACRO 시리즈는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신소재 배합 및 제어 기술을 시험하는 연구용 장비부터, 무한궤도나 트럭에 탑재되어 실제 현장을 누비는 상용 시공 장비까지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기술의 적용 범위는 곡면 조경물이나 소형 주택에 그치지 않는다. 속이 빈 벽체를 출력한 뒤 흙의 압력으로 지지하는 옹벽 공법으로 특허를 확보해, 비정형 사면이 많은 토목 현장까지 진출했다. 동아로보틱스가 주목하는 다음 무대는 재난 복구 현장 등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위험 환경이다. 현재 산학연 협력을 통해 로봇이 무인으로 구조물을 짓고 보수하는 '피지컬 AI' 기술을 활발히 실증해 나가고 있다.

동아로보틱스 3D 콘크리트 프린터 ACRO-IRT 장비 전경

동아로보틱스의 3D 콘크리트 프린팅 작업장. 갠트리형 대형 프린터와 다관절 로봇팔을 갖췄다.

© 동아로보틱스

다관절 로봇팔이 콘크리트를 층층이 쌓아 원통형 구조물을 출력하는 모습

다관절 로봇팔이 거푸집 없이 콘크리트를 한 층씩 쌓아 비정형 구조물을 빚는다.

© 동아로보틱스

스패너 — 있는 장비를 자율화하다

스패너 솔루션의 특징은 새로운 장비 구매가 필요치 않다는 점이다. 굴착기나 항타기처럼 이미 현장에서 굴러가는 장비에 'X1'이라는 장치를 얹어, 검증된 기존 장비를 자율작업이 가능한 피지컬 AI 장비로 바꾼다. 머신가이던스로 장비가 설계도면대로 정확히 움직이게 하고, 거기서 한 걸음 더 작업을 자동화한다. 두산밥캣·HD건설기계·볼보건설기계·라이카 지오시스템스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 모여 세운 회사다.

강조점은 비용이다. 고가의 자율 장비를 새로 사는 대신, 파일 박기나 평탄화처럼 필요한 작업만 월 구독으로 빌려 쓰게 했다. 검증된 기존 장비를 그대로 쓰니 도입 문턱이 낮다. 국내에서는 토공 자동화 솔루션을 건설기계 임대사 500여 곳에 공급했고, 미국에서는 상위 20대 태양광 발전소 시공사 열에 아홉과 거래하며 한 현장의 핵심 공정 인력을 네 명에서 한 명으로 줄였다. 2026년 5월 시리즈 B 브릿지라운드로 256억 원을 유치해, 누적 520억 원을 모았다.

스패너 자동화 기술이 탑재된 굴착기의 토공 작업

미국 애리조나 배터리 저장 시설(BESS) 건설 현장에서 스패너 자동화 기술을 단 굴착기가 토공 공정을 수행하고 있다.

© 스패너

이들 스타트업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창업자와 기술진 상당수가 현장 출신이라는 것이다. 불편함을 가장 가까이서 본 사람들이, 그 불편함을 기술로 풀고 있는 셈이다.

로봇이 오른 자리, 사람이 서는 자리

이 이야기의 끝은 결국 사람이다. 건설 현장에 로봇이 들어오면 일자리가 사라지는가. 단기적으로 특정 공정의 인력 수요가 줄어드는 건 사실이다. 다만 현장의 변화를 들여다보면 결이 다른 그림이 보인다.

로봇이 생겨난 자리마다 새로운 역할이 같이 생긴다. 스팟의 점검 데이터를 분석하는 사람, 미장 로봇의 경로를 잡는 사람, 도장 로봇을 원격 조종하는 사람, 밤사이 자재 로봇의 운행을 지키는 사람. 기술을 운용하고 데이터를 판단하는 일이 새로운 직무로 등장하고 있다. 위험한 자리에서 내려온 노동자가 판단하는 자리로 올라서는 과정이다.

이 전환이 모든 현장에 균등하게 닿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지금까지 소개한 로봇 대부분은 대형 건설사와 그들의 큰 현장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건설 사고 사망의 약 60%는 공사비 50억 원 미만의 영세한 현장에서 일어난다. 올해 1분기에는 그 비율이 74%까지 치솟았다. 정작 로봇이 가장 절실한 자리가 아직 그 바깥에 있다는 뜻이다.

로봇을 사는 대신 빌려 쓰거나, 한 대를 여러 현장이 나눠 쓰는 방식, 운용 교육과 정비를 묶어 지원하는 길이 중소 건설사의 현실적인 출발점으로 거론된다. 정부가 스마트 건설 연구개발에서 실증과 강소기업 지원에 무게를 두는 것도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다. 초기 비용과 운용 부담을 그들의 형편에 맞추는 일이 다음 단계다.

2026년의 건설 현장은 로봇과 사람이 공존하는 과도기다. 로봇이 오른 자리가 '아무도 가면 안 되는 자리'였다면, 그것만으로도 시작은 충분하다. 스마트 건설의 본질은 기계를 들이는 데 있지 않다.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를 다시 설계하는 데 있다.

위험한 자리는 로봇이, 판단하는 자리는 사람이. 건설 현장의 자동화는 일자리 소멸이 아니라 역할의 재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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