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BUILD MAGAZINE
코리아빌드 매거진
대한민국 건설·건축·인테리어의 현재와 미래를 담는 코리아빌드 매거진.
분야별 최신 트렌드부터 주목할 브랜드, 전문가 인사이트까지 산업의 모든 이야기를 전합니다.
누군가는 그를 거장 이타미 준(유동룡)의 딸로 기억한다. 누군가는 시호재와 유동룡미술관, 페즈와 하늘소리를 빚어낸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의 대표로 기억한다. 또 누군가는 어린이 건축학교를 운영하는 이타미준건축문화재단 이사장으로 기억한다. 유이화 건축가는 이 세 자리를 동시에 짊어진다. 받은 유산을 운영하는 자, 자기 시대의 건축을 짓는 자, 다음 세대에 길을 여는 자.
작업을 보면 시원스러운 직선과 우아한 곡선, 어두움과 빛의 음영이 공존합니다. 소장님의 건축 어휘가 드러나는 지점이에요.
물론 사이트에서 직관적으로 영감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제 경우는 사람의 행태를 고민하는 편이에요. 사용자가 그 공간을 경험한다라는 가정 하에 공간을 씬으로 생각을 많이 해요. 사람들이 걸어 들어가서 만나는 첫 인상, 그리고 두 번째 시퀀스, 세 번째 펼쳐지는 인상, 네 번째 경험하는 등 뭐 이렇게 내가 걸어 들어간다라는 상상을 하죠. 이용자가 어디에서 진입할지, 건물 안으로 들어갔을 때 어떤 무드로 이 건물과 공간을 경험을 했으면 좋을지를 고민하고 이 시퀀스로 디자인을 풀어 나가요.
그럼 바깥에서 보는 전체적인 덩어리감과 그 안에 들어가는 사람의 경험을 동시에 설계하시는 건가요?
형태와 시퀀스가 계속 서로 주고 받으며 동시에 피드백을 하죠. 뭐가 우선이다 이런 건 없어요. 어떤때는 사람이 움직이는 행태를 분석하고 그 시퀀스에 초점에서 푸는 경우도 있어요. 한남동의 복합문화공간 페즈(FEZH)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에요. 사람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건물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야 하는지가 중요했어요.
광고 기획 회사를 하시는 대표님이 건축주에요. 이야기를 나누며 모로코의 페즈를 떠올렸어요. 좁은 골목을 찾아다니고 궁금해하며 기대감에 차는 곳. 그런 건물이고 싶었어요. 또, 한남동 주민들이 지나가다가 그냥 쉴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는 데 의견이 모였죠. 자연스레 날카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따뜻한 어떤 동굴에 들어가는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그럼 소재는 나무로 하자, 이런 식으로 디자인이 정해졌어요.

한남동 복합문화공간 페즈(FEZH). 오래된 동네에 스미듯 앉았다.
© 김용관

궁금증을 유지하며 공간을 누비는 경험을 만들어낸 페즈의 실내 전경.
© 김용관
넓지 않은 대지인지라 그런 탐험의 길을 만드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대지라는 건 수평적인 한계가 있으니까, 어떻게 하면 수직적으로 확장을 시켜가면서 이 궁금증을 끝까지 끌고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어요. 저 위 꼭대기까지 가보고 싶다는 텐션을 유지하는 거요. 그래서 여러 가지 건축적 장치를 줬어요. 미지의 세계를 들어가는 것처럼 브릿지를 건너 건물 안으로 들어가도록 한다든가, 계단을 오르다 돌아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 갑자기 가로질러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든가, 또 갑자기 밖으로 나가는 듯싶다가 정적인 공간이 탁 트여 나오는 등이요. 발견하는 재미, 유저들이 공간을 찾아 탐험하는 재미를 주고 싶었어요.
마감재를 고른 배경도 궁금합니다.
오래된 동네에 새 건물이라고 딱 들어왔는데 나 잘났어 하면서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스미듯이 건물이 지어졌으면 좋겠는데, 그럼 컬러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벽돌과 나무, 이 두 가지로만 외벽을 구상하기로 했어요. 고를 때도 가장 튀지 않는 색과 재료로만 했어요. 나무와 벽돌은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바래고 비바람이 묻으며 자연스러워지잖아요. 이미 외벽 일부는 그레이 컬러로 바뀌었어요.
한남동 동네를 걷다 보면 파사드로 다 가득 차 있잖아요. 헌데 중간에 '비움'을 둠으로써, "어? 이게 뭐야?" 하는 느낌표를 만들고 싶었어요. 오픈한 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페즈를 찾았는데, 사람들이 편하게 삼삼오오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버스킹 공연을 보는 모습을 보았어요. 제가 상상하면서 설계했던 그 모습이 실제로 그렇게 펼쳐지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감동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찍어서 올렸어요. 원래 잘 SNS를 하지 않는데도 말이죠. 그때 제가 한 말이 이거였어요. "오늘도 이 건물은 잘 자라고 있다."
오늘도 이 건물은 잘 자라고 있다.

칠곡 시호재. 난개발 풍경은 가리고, 원경의 팔공산 자락만 들이도록 '건물로 담을 쳤다'.
© 김용관
칠곡 시호재로 넘어가 볼까요. 페즈가 사람의 동선에서 시작했다면, 시호재는 시작점이 '땅'이었던 것 같습니다.
맞아요. 시호재는 하늘에서 본 뷰를 보시면 단번에 이해가 되실 거예요. 주변이 우리가 로망으로 떠올리는 그 목가적인 시골 풍경이 전혀 아니거든요. 파란 슬레이트 지붕에 빨강, 주황이 제멋대로 뒤섞인, 한눈에도 난개발이 진행된 풍경이에요. '와, 이걸 어떡하지' 싶었죠. 그런데 저 멀리 원경의 팔공산 자락은 에너지가 충만한 거예요. 산이 가진 그 압도하는 에너지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저 원경의 팔공산 자락만 취하자. 사실 건물로 담을 친 거예요. 신경을 긁는 주변 풍경은 전부 가리고, 오직 산자락만 들이기로요.
그 풍경을 취하고 가리는 일을, 또 조경을 들이는 일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계하셨나요.
철저히 아이 레벨에서요. 사용자가 주차를 하고 걸어 들어오는 동선을 따라가 보면, 진입로가 전이 공간이 되면서 주변에 신경을 긁던 풍경은 하나도 안 보이고 원경의 팔공산 자락만 보이도록 했어요. 제 눈높이에서 풍경을 트리밍한 거예요. 거슬리는 건 화면에서 지우듯 잘라내고, 산자락의 추임새는 그대로 지붕이 이어받게 했어요. 지붕 선이 산세를 따라 이렇게 흐르도록요.
그리고 조경은, 마치 오래전부터 있던 정원을 피해서 건물이 들어선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실제로 찾아오신 분들이 '여기 원래 있던 조경을 피해서 지었구나' 하고 생각하시면, 정확히 적중한 거죠. 사실은 전부 새로 만든 거예요. 그래서 경북 칠곡인데도 굳이 제주에 계신 김봉찬 대표님을 모셔왔어요. 제주의 정원은 최대한 자연스러운 것이 멋있다는 생각을 바탕에 두거든요. 그 자연주의가 시호재에 필요했어요. 오래 손발을 맞춰온 베테랑이라, 돌 하나도 원래 거기 있었던 것처럼 놓으세요. 지금 시호재를 찾는 분들은 근경의 조경과 저 원경의 팔공산 자락을 함께 보시는 거예요.
그렇게 조경과 산을 들였다면, 정작 건물은 어떤 자리에 두신 건가요.
저는 조경과 산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이 올 줄은 몰랐어요. 카페도 직원들 쓸 자리로 그냥 조그맣게 두려던 거였는데, 너무 많은 분들이 찾아오셨죠.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고민한 건 하나예요. 어떻게 하면 건물이 튀지 않고 묻힐까. 그래서 노출 콘크리트에 블랙 콘크리트로, 자연의 색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배경색을 만들었어요. 사계절 자연이 가진 계절감, 시시각각 바뀌는 색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요. 건물은 끝까지 배경처럼 묻히게, 주인공은 산과 조경이게.

조경과 산이 주인공. 건물은 노출 콘크리트로 배경처럼 묻힌다.
© 김용관
예전 인터뷰에서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을 이야기한 내용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소장님이 생각하시는 '사회적 과제'는 무엇입니까?
친환경적인 건물을 한다고 하지만, 흉내만 내는 건물들이 지금 너무 많아요. ESG가 트렌드처럼 이야기되고 기후 위기를 입에 올리지만, 정작 실질은 따라가지 못하는 거죠. 더 답답한 건 제도예요. 친환경적인 구조를 만들 정책적 준비가 안 되어 있거든요.
두 가지가 대표적이에요. 하나는 점수표예요. 친환경 건물로 인정받으려면 정해진 점수를 채워야 하는데, 그 목록을 보면 다 설비 기계 위주거든요. 또 하나는 목조 건축이에요. 기후 위기에 대응할 유일한 방법이라고들 하지만, 우리나라는 목조 건축법이 없어요. 발의는 되어 있지만 언제 통과될지 모르고, 그러니 목조 건축물이 가진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거죠. 유럽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에서는 공공 건물이 목조 건축을 앞장서서 대중화하고, 그 선도가 다시 민간을 끌어들여요. 우리는 그런 사례도 턱없이 부족하고, 일단 법이 통과돼야 풀리는 숙제가 너무 많아요.
사실 건축 자체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죠.
전 세계 탄소 발생량을 100으로 본다면, 건축이 차지하는 비율이 거의 30이래요. 엄청난 거예요. 콘크리트 건물 하나 짓는 데 레미콘을 돌리는 과정만 봐도 그렇잖아요.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아직 그걸 인지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한 채 콘크리트 건물만 계속 지어요. 달리 선택지가 없으니까요.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한 고민이 정말 많이 이루어져야 해요.
그런 문제의식을 실제 프로젝트에 담아내신 적이 있으신가요?
폐자재를 함께 활용하는 방식이 하나예요. 바닥 재료를 예로 들면, 예전에 도끼다시라고 부르던 테라조가 한때는 오히려 환경 오염원으로 여겨졌는데, 요즘은 친환경 소재로 다시 주목받고 있어요. 폐자재를 현장에서 그대로 갈아서 쓰도록 유도하는 거죠. 목조를 쓰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건축주께 그런 제안을 드려요.
건축주에게 제안하면, 실제로 받아들여지나요?
건축가가 그런 생각으로 제안을 드리면 대부분은 받아들여 주세요. 결국 건축주의 의지에 달린 부분이죠. 하지만 행정적인 이점이 동반되면 훨씬 빠르고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요. 친환경으로 갈수록 비용이 비인간적으로 불어난다면 어떤 건축주가 선뜻 하자고 하겠어요. 거꾸로 친환경 건물로, 목조 그린 아키텍처로 갈수록 인센티브를 준다면, 그게 명분이 되어 건축주를 움직일 수 있어요. 나 혼자 착한 건축 하겠다고 돈은 더 들이고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누가 하고 싶겠어요. 그래서 유연한 인센티브 제도가 필요하고, 제도가 같이 받쳐줘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민간은 제도가 움직여야 따라 움직이거든요.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이노이즈(INNOIZ).
© 신경섭

쓰는 사람의 경험을 먼저 그리고, 그 행태가 형태가 되게 한다.
© 신경섭
이번 8월 강연하실 디자인써밋 주제인 '고유함을 짓는 방법'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AI와 컴퓨테이팅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실무를 하는 젊은 친구들은 이러한 기술을 도구로 이용해야 하는 과제 앞에 직면했어요.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 궁금했어요.
어느 시대나 도구는 바뀌고, 어느 시대나 혁명은 있어요. 우리 90년대 초중반에 오토캐드(AutoCAD)가 나왔을 때, 다들 제도판에 손으로 그려 청사진 뜨다가 갑자기 캐드로 넘어갔는데 채 10년도 안 걸렸어요. 그다음엔 컴퓨터 렌더링이었죠. 제가 90년대 중반에 뉴욕으로 건축 공부를 하러 갔는데, 그때 라이노(Rhino) 같은 3D 모델링 프로그램이 나오면서 학교들이 다 컴퓨터 학원처럼 됐어요. 디지털 건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거죠. 도구는 늘 혁명을 거쳐 개발돼 왔어요. 그리고 지금, AI를 통해 또 한 번의 디지털 혁명이 일어난 거고요.
저도 처음엔 사람이 할 일을 AI가 다 해버리는 거 아닌가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빨리 흡수하려고 해요. 결국 도구잖아요. 이 도구를 나한테 맞게 어떻게 쓸 것이냐가 문제죠. 그래서 저희 직원들한테도 AI 도구를 빨리 익히라고, 구독도 다 시켜줬어요.
그럼 그렇게 아낀 시간에 건축가는 무엇을 하나요.
그만큼 생각할 시간, 디자인을 깊이 고민할 시간이 많아졌다는 거니까, 그걸 잘 써야죠. 중요한 건 거기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도구로 활용하는 거예요. 저는 로봇 팔, 로봇 다리를 장착한 것처럼 아주 긍정적으로 봐요. 어차피 시대가 그렇게 흘러간다면 내가 취해야죠. 활용할 부분은 적극 활용하고요. 더 나은 완성도와 질을 위해서, 더 단단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 위해서요.
방금 '잘 써야 한다'는 말이 탁 잡힙니다. 가끔 이 도구가 피카소처럼 척척 그려주니까, 거기에 휘둘릴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본인의 철학이 중요해요. 저만 해도 그동안 쌓아온 포트폴리오가 있잖아요. 업력이라는 게 있으니까, 내가 동그라미를 만들든 네모를 만들든 "이런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했을 때 지나온 작업이 그걸 받쳐줘요. AI 도구를 쓰더라도 내 생각이 앞서고 내 철학이 앞서면 설득력을 가져갈 수 있죠. 그런데 젊은 건축가들은 업력이 없잖아요. 철학을 뒷받침해 줄 자기 내력이 없으면 도구에 끌려가기 쉬워요. "이건 AI가 만든 거예요"가 아니라 "내가 이런 생각으로 만들었다"는 데 무게가 실리려면, 그만큼 창작자의 철학과 생각과 논리 구조가 훨씬 단단해야 한다는 얘기죠. 기술적인 부분은 앞으로 AI가 더 받쳐줄 거예요. 그럴수록 내가 이 시대에 필요한 게 뭔지, 왜 이 형태의 건축물이 여기 존재해야 하는지를 오히려 더 탐구해야 하는 거죠.
그러면 이 도구를 훨씬 더 많이 쓰게 될 후배 건축가들에게 해주실 말씀도 있을까요.
본인의 고유함을 찾아라. 본질에 더 주목하고 집중해야만 AI와 잘 공존할 수 있어요. 본인만의 고유함이 없다면 AI랑 다를 게 뭐가 있어요? AI는 세상에 없는 건 못 만들거든요. 이미 있는 데이터베이스 안에서 조합하는 거지. 건축은 건축을 통해 내보내는 언어예요. 그 안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 시대성을 이야기하고, 그 시대를 사는 사람을 담아야 하는데, 시대에 공감하고 사람에 공감하는 일은 AI가 못 해요. 그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죠. 우리가 프롬프트를 잘 써야 AI를 잘 활용한다고 하잖아요. 그 프롬프트에 담을 내용 자체가 그 사람의 철학이어야 해요. 디자이너의 철학에, 본질이 담겨 있어야 하는 거죠.
본인만의 고유함이 없다면 AI랑 다를 게 뭐가 있어요? AI는 세상에 없는 건 못 만들거든요.

유동룡미술관. 이타미 준(유동룡)의 건축 철학을 잇는 공간이자, 다음 세대에 그 뜻을 전하는 통로다.
© 김용관
소장님은 다른 건축가들과 시작점이 달라 보입니다. 아버님이라는 존재가 계셨으니까요. 그렇다고 누구나 그 자리를 안정적으로 잇는 건 아닐 텐데요. 아버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큰 유산이 무엇인지, 소장님 입으로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물려받은 가장 큰 것은 건축을 임하는 자세와 태도예요. 누구에게나 스승이 있지만, 저는 정말 존경할 수 있는 건축가를 아버지로, 또 선배이자 스승으로 가까이서 모셨으니 그건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아버지한테 배운 건 디자인 기법이 아니라, 건축을 대하는 자세, 건축주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건축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태도였어요.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엄격한 분이셨어요. 프로젝트 하나하나에 임하는 자세가 진지하고 열정적이셨고, 어떤 건축주를 만나도 늘 귀를 열고 계셨죠. 그런 부분들을 배웠어요. 아버지의 철학은 제 근간이지만, 저는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제 시대를 사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제게서 펼쳐지는 결과물은 또 달라지겠죠. 그래도 저의 뿌리가 아버지라는 건 부정할 수 없어요.
아버님은 작고하셨어도, 소장님을 통해 그 철학이 계속 이어지는 셈이네요.
저는 지금 이 시대야말로 아버지의 철학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버지는 늘 건축이란 인간과 자연을 잇는 매개체여야 한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자연을 통한 회복이요. 디지털 시대로 갈수록, 그 지역과 환경이 가진 풍토와 맥락이 오히려 더 중요해지고 더 주목해야 하는 시대가 될 것 같아요. 아버지는 바람의 노래를 이야기하시면서, 이 땅이 들려주는 언어와 노래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하셨어요. 어떤 사이트든 그 사이트만이 가진 고유한 색과 환경이 있고, 거기에 순응하는 건물을 만드는 게 건축가의 역할이라는 거죠. 그런데 그건 AI가 못 하거든요. 그래서 디지털 시대로 갈수록, 이타미 준의 건축 철학은 너무나 필요해요.
디지털 시대로 갈수록, 이타미 준의 건축 철학은 너무나 필요하다.

'빛과 바람을 끌어들여, 건축을 통해 자연을 느끼게 한다'는 이타미 준의 철학을 전하는 미술관.
© 김용관
그 정신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다음 세대에게 그것을 남기는 일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그 메시지를 더 멀리, 미래에 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어린이 건축학교를 만들었어요. 지금까지 거쳐 간 초등학생이 이미 7천 명이고, 앞으로도 계속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날 거예요. 물론 저는 저대로 건축가로서의 삶도 살아야죠. 그러니까 그런 메시지를 유동룡미술관을 통해서, 또 어린이 건축학교를 통해서 계속 전하고 있는 거예요. 그 정신은 늘 그 밑에 깔려 있죠.
편집자 노트
그는 일전에 아버지를 두고 "마스터 아키텍트의 마지막 세대"라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그 다음 세대를 잇는 건축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한 사람의 이름으로 시대를 호령하던 거장의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서, 콘크리트가 더 이상 미덕이 아니고 손이 컴퓨터에 자리를 내주는 이 시대에, 다음 세대의 건축가는 무엇을 이어받아 무엇을 자기 시대의 언어로 옮겨야 하는가?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자기 결을 다듬어가는 한국의 건축가에게, 그 답을 묻는다. 오는 8월, 코엑스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