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BUILD MAGAZINE
코리아빌드 매거진
대한민국 건설·건축·인테리어의 현재와 미래를 담는 코리아빌드 매거진.
분야별 최신 트렌드부터 주목할 브랜드, 전문가 인사이트까지 산업의 모든 이야기를 전합니다.
시게루 반에게는 두 곳의 사무소가 있다. 하나는 시게루 반 아키텍츠(SBA), 다른 하나는 재난과 난민 구호에 전념하는 비영리 조직 볼런터리 아키텍츠 네트워크(VAN)다. 언뜻 모순처럼 보이는 이 구도는 실은 그의 손 안에서 서로를 떠받치며 공존하는 두 조직이다. 두 축이 서로를 지탱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하나의 방법론. 오는 8월, 서울에서 우리는 그 결이 어떻게 직조되어 왔는지를 듣는다.
한국과의 인연이 벌써 20여 년이 되어갑니다. 페이퍼테이너 뮤지엄부터 여주 해슬리 나인브릿지, DDP에서의 재난주택 모듈까지, 그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인상이 어떠셨나요.
일본과 한국의 클라이언트를 비교해 보면, 한국 기업은 창업가 집안 출신의 강력한 리더가 이끄는 경우가 많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반면 일본의 대기업은 대부분 3~4년 정도만 자리에 머무는 '샐러리맨형' CEO가 운영합니다. 이들은 문화에 큰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건축 문화에도 흥미가 적은 편입니다. 대형 건축 사무소에 의뢰해 무난한 건물을 짓는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지요.
이런 차이 때문에 저는 한국 클라이언트와의 작업이 무척 편안합니다. 건축에 대한 비전이 분명하고, 그 비전에 대한 헌신도 강한 경우가 많거든요.
2013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카드보드 성당. 지진으로 무너진 대성당을 대신해 종이관이 구조를 떠받쳤다 — 재난 건축과 영구 건축의 경계를 지운 작업이다.
©Stephen Goodenough
그의 인도주의적 작업은 1994년 르완다 제노사이드로 삶의 터전을 잃은 약 200만 난민의 참혹한 환경을 목격하고 UNHCR에 종이관 셸터를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 1995년 고베 지진 이후 베트남 난민을 위한 페이퍼 로그 하우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대피소의 페이퍼 파티션 시스템, 2013년 크라이스트처치의 카드보드 성당, 그리고 보다 최근의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모로코 지진, 마우이 산불, 우크라이나에 이르기까지 — 그 작업은 한 번도 끊긴 적이 없다.
SBA와 VAN, 30년 가까이 이 두 사무소를 함께 이끌어 오셨습니다. 한 명의 건축가에게 두 조직은 각각 어떤 자리에 있는지요.
SBA와 VAN 사이에는 어떤 간극도 없습니다. 저에게는 미술관을 설계하는 일과 재난 이후의 임시 주택을 설계하는 일이 똑같은 관심과 열정의 대상입니다. 두 프로젝트의 유일한 차이는 보수를 받느냐 받지 않느냐인데, 저에게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 두 작업 안에서 소장님 자신의 역할은 어떠하신지요. 그리고 새 프로젝트를 시작하실 때 가장 먼저 챙기시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 역할은 SBA와 VAN에서 똑같습니다. 저는 리더이자 유일한 디자이너입니다. 어떤 프로젝트든 그 시작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그 부지의 조건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1994년 르완다에서 시작된 그 작업이 지금까지 한 번도 끊긴 적이 없습니다. 그때와 2026년 지금,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이 같고 또 무엇이 달라졌다고 보시는지요.
아주 단순한 일입니다. 다친 사람과 아픈 사람이 있는 곳에 의사가 가서 도와주는 것이 그들의 역할입니다. 전쟁 후이든 자연재해 후이든 마찬가지지요. 같은 방식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건축가가 그 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의사와 똑같이.
퐁피두 메스 센터(프랑스). 직조한 목재 격자가 물결치는 지붕을 이룬다 — 구조가 곧 형태가 되는 그의 어휘다.
©Didier Boy de la Tour
후지산 세계유산센터(시즈오카). 뒤집힌 원뿔형 목조 격자가 수면에 비쳐 후지산을 그린다 — 구조와 재료, 장소가 하나로 맞물린 작업이다.
©Hiroyuki Hirai
여주 해슬리 나인브릿지 클럽하우스. 한국에 남긴 대표작으로, 목재 격자 지붕이 공간을 덮는다.
©Hiroyuki Hirai
종이관에서 목재, 강재, 콘크리트, 심지어 맥주 상자까지 — 재료의 위계가 없어 보입니다. 재료를 고르는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나쁜 재료라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재료에는 그 재료만의 특성이 있습니다. 저는 강철, 콘크리트, 목재 등 온갖 종류의 재료를 모두 사용합니다. 핵심은 각 재료를 이해하고, 그것이 본래 가진 특질을 살려서 적절히 쓰는 것입니다.
디지털 도구와 AI가 건축의 설계와 시공, 시뮬레이션의 영역까지 빠르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 변화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우리도 알다시피, 첨단 기술이 없던 수백 년 전의 건축이 더 좋았습니다. 기술의 진보는 설계와 시공에 드는 시간과 노동을 절약해 주지만, 건축의 질을 반드시 향상시키지는 않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건축가가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손으로 그리는 일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컴퓨터로 그린 도면은 머리와 연결되어 있지만, 손으로 그린 도면은 가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손으로 그릴 때, 아이디어는 더 직관적이고 직접적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라 센 뮤지컬(파리 인근 불로뉴비양쿠르). 목재 격자 셸이 공연장을 감싼다 — 재료의 특질을 그대로 구조로 끌어올린 사례다.
©Didier Boy de la Tour
마지막으로, 오는 8월 서울 강연에서 가장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요. 자신만의 길을 막 쌓아가는 젊은 창작자들에게 함께 건네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활용 가능한 기술을 쓰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것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구조와 재료의 개발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 시대에 유행하는 양식에 휘둘리지 않고 저 자신만의 접근법을 만들어 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