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BUILD MAGAZINE

코리아빌드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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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생성되는 시대, 설계하는 사람
AI가 침투한 디자인 아뜰리에의 풍경
에디터 양재영, 정사은 김석훈
생성되는 시대, 설계하는 사람

최근의 디자인 실무와 학교 풍경은 조용하지만, 분명 달라지고 있다. 예전 디자인 스튜디오에서는 벽면을 가득 채운 레퍼런스 이미지나 손으로 그린 스케치, 재료 샘플들, 모형, 넘쳐나는 이면지 출력물이 아이디어의 진행 과정을 보여주는 듯 했다. 하나의 공간을 설명하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리서치, 스케치, 모델링, 렌더링, 그 이후의 긴 보정 시간이 순차적으로 필요했고, 그 시간의 축적이 곧 디자인의 밀도를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학생이 수업에 가져오는 이미지는 놀라울 만큼 완성도가 높다. 빛은 의도에 따라 원하는 위치에 맺히고, 재료의 질감은 풍부하게 느껴지면서 전반적인 공간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이한 점은, 이런 표현이 고학년 학생뿐 아니라 갓 배우기 시작한 학생들에게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실무에서도 마찬가지다. 초기 컨셉 미팅에서 아직 평면이 정리되지 않은 프로젝트가 마치 완공 사진을 찍은 것처럼 제시되기도 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이것은 설계된 것인가, 생성된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이미지 제작 방식을 묻는 것이 아니라, 지금 디자인 과정의 중심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제, 사람의 역할은 '책임 지는 것'

과거에는 하나의 이미지를 완성하기까지의 시간이 디자인의 깊이를 증명해주었다. 하지만 AI의 도입 이후, 이미지는 더 이상 긴 시간의 결과물이 아니게 되었다. 좋은 프롬프트와 적절한 레퍼런스, 빠른 편집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장면을 단시간 내에 만들어낼 수 있다. 이 변화는 디자인의 가능성을 넓히는 동시에, 새로운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우리는 완성도 높은 이미지를 보면서도 그것이 실제 공간에 구축될 수 있는지, 사용자를 고려하며 경험을 충분히 담고 있는지, 또는 피상적인 매력에 머물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질문해야 한다.

결국 지금 도래하는 AI 시대의 핵심은 "누가 만들었는지"보다 "무엇을 판단했는지"에 있다. AI를 사용했는지의 여부가 아닌, 그 과정 안에서 디자이너가 어떤 질문을 세우고, 어떤 가능성을 선택했으며, 어떻게 책임을 졌는가이다.

스튜디오 익센트릭 프로젝트 이미지

스튜디오 익센트릭의 호스피탈리티 프로젝트. AI가 생성하는 이미지는 방향을 제시하지만, 공간의 경험과 논리를 만드는 것은 여전히 디자이너의 몫이다.

© 스튜디오 익센트릭

현재 직접 이끌고 있는 스튜디오 익센트릭에서도 AI 기술은 이미 스튜디오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다만 이것이 우리가 해오던 디자인을 대신한다기보다는, 디자인을 하는 과정의 특정 구간을 확장하거나 가속시키는 도구에 가깝다. 아직까지 AI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디자인이 아니다. 하나의 디자인 방향일 수는 있지만, 공간의 논리나 경험의 구조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스튜디오 익센트릭이 추구하는 인테리어 디자인, 특히 호텔과 같은 호스피탈리티 공간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멋진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지를 설계하는 일이며, 이 경험에 대한 고민은 아직 AI가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렇기에 AI는 현재로서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다. AI는 매우 빠르게 수많은 스타일을 생성한다. 하지만 그 속도로 인해 디자인이 얕아질 위험도 있다. 최근 생성되는 AI 이미지를 보면 서로 다른 프로젝트들이 이상하게 비슷해지는 현상을 자주 보곤 한다. 공간은 현실보다 더 완벽해 보인다.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듯한 이미지다. 이것은 디자인의 민주화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감각의 평균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AI 시대의 디자이너에게 더 중요해진 능력은 프롬프트를 잘 쓰는 것이 아닌,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는 능력이다. AI는 우리에게 수십 개, 수백 개의 이미지를 제안할 수 있지만, 그중 어떤 것은 프로젝트의 본질에 맞고, 어떤 것은 보기 좋기만 한 착시에 불과하다.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축적된 경험과 공간에 대한 충분한 이해, 문화적 해석 능력, 그리고 디자이너의 미적 윤리가 중요하다.

AI 시대의 디자이너에게 더 중요해진 능력은 프롬프트를 잘 쓰는 능력이 아닌, 바로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는 능력이다.

현재 전임교수로 재직 중인 한양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끼는 변화도 크다. 지금의 학생들은 AI를 매우 자연스럽게 다룬다. 그들에게 AI는 특별한 기술이라기보다는 검색 엔진이자 렌더링 툴이고, 조언자이자 공동 작업자에 가깝다.

과거의 학생들은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레퍼런스를 찾고, 손으로 스케치하면서 모델링을 반복하는 과정을 거쳤지만, 지금은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시각적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변화는 분명 긍정적이다. 학생들이 더 빠르게 상상하고, 더 과감하게 시도해볼 수 있도록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려도 있다. 완성도 높은 이미지가 생성됨에 따라 학생들은 자신이 디자인을 완성했다고 착각하기 쉽다. 마지막에 도달되어야 할 이미지가 먼저 설득력을 갖게 되면, 그 뒤에 따라와야 할 평면, 단면, 구조, 재료, 공간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이 약해질 수 있다. 디자인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려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로서의 사고 과정을 배우는 것이다.

핸드드로잉 스케치 또는 직접 제작한 모형

손으로 그리고 직접 만드는 과정. AI가 이미지의 속도를 높일수록, 이 느린 손의 시간이 가진 의미는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 스튜디오 익센트릭

AI는 디자인을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 존재

AI가 디자인 업계에 반영되면서 우리는 더 많고, 더 좋은 이미지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제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것은 더 느린 판단일지도 모르겠다. 빠른 생성의 시대일수록 무엇이 진짜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지 오래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진 셈이다.

AI를 두려워하는 디자이너들도 많다. 때로는 AI로 도움 받은 디자인을 부정하기도 한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지만, 현재로서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다만 AI를 너무 쉽게 믿어서도 안 된다. AI는 새로운 디자인 도구이자, 때로는 매우 강력한 동료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디자이너는 질문을 세울 줄 알아야 하며, 맥락을 해석하면서 경험을 구축하고, 판단을 내린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AI는 우리를 대신해서 디자인하는 존재라기보다는, 디자인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만드는 존재다. 그 질문 앞에서 우리가 더 깊이 생각할수록, 디자인은 오히려 더 인간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AI가 속도를 제공한다면 디자이너는 깊이를 만들어야 하며, AI가 이미지를 만든다면 디자이너는 이미지 속 공간의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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